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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3-06-12본문
L는 퇴직금과 은행대출을 통해 마련한 자본으로 고급 PC방을 운영하려 준비 중이다.
100평이 넘는 건물 1,2층 전체의 임대, 인테리어를 진행하고 이제 컴퓨터만 설치하면 바로 사업이 가능한 상태였다.
컴퓨터는 친구인 S로부터 300대의 PC를 이달 말일까지 지급받기로 하였다.
긴축재정도 이번 달까지 일 뿐 다음 주부터는 월급과 비교도 안 되는 수입이 있을 것이라 아내에게 호언장담도 해 두었다.
문제는 친구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말로만 300대의 컴퓨터 납품을 이야기 하였다는 점이다.
친구 S는 개업 예정일이 열흘이나 지나도록 납품을 하지 않다가 사업을 정리하게 되어 납품이 어려울 것 같다는 문자만을 보냈기 때문이다.
L은 영업을 개시하지 못해 발생한 대출 이자, 건물 임대료 등으로 인한 손해를 S에게 청구하였으나 오히려 S가 계약서조차 없으니 손해를 배상하기는 어렵다고 큰 소리를 친다며 소송을 하시고 싶어 찾아오셨다.
"구두게약도 계약이오!" 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며 말이다.
맞는 말씀이다.
하지만 실무적으로는 꼭 맞는 말씀이 아니다.
계약이란 영미법계에서는 약속이라는 본질을, 독일, 한국 등의 대륙법계에서는 합의라는 본질을 바탕으로 한다.
강학상의 논의일 뿐 결국 당사자 사이의 의사 합치를 통해 권리나 의무를 부담하기로 하는 등 어떠한 사법적인 효과를 발생시키기로 하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위 사건처럼 당사자들이 '우리가 남이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 말로만 합의를 진행한 소위 '구두계약'이 존재하고 해당 계약에 따른 이행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계약의 효력에 관한 것이다.
판례는 우리법이 낙성주의, 즉 합의만으로도 계약이 성립한다고 보아 당사자간에 청약의 의사표시와 그에 대한 승낙의 의사표시의 합치로 성립하는 이른바 낙성계약으로서 서면의 작성을 필요로 하지 아니하고, 그 청약의 의사표시는 그 내용이 이에 대한 승낙만 있으면 곧 계약이 성립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어야 하고, 승낙은 이와같은 구체적인 청약에 대한 것이어야 할 것이며, 이 경우에 그 승낙의 의사표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방법에 아무런 제한이 없고 반드시 명시적임을 요하는 것도 아니다 (대법원 1992. 10.13. 선고 92다 29696 판결 참조)고 판시하였는 바, 위 당사자들 사이에 300대의 PC납품계약에 관한 의사의 합치, 즉 말만으로도 계약은 성립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소송 중 발생하는 실무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제가 S와 PC 300대 남품을 언제언제까지 받기로 하는 계약을 구두로 체결하였습니다."
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 L에게 그 입증책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위 내용에 관한 통화녹음을 통한 충분한 입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업을 계속 해 온 분들이 아니라면 쉽지 않은 증거일 것이다.
여담이지만 필자가 자주 뵙는 한 사업가 분에게는 휴대폰 어플을 통해 모든 통화내용이 자동으로 녹음, 본인의 웹하드에 다시 자동으로 업로드 되게 하는
놀랍지만 씁쓸한 습관이 있었다. 그 만큼 일상에 '말로만'하는 계약이 잦으며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빈번하기 때문이리라.
돌아와서 살펴보자면, 그렇다고 L에게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사자들의 친필로 된 메모, 계약의 내용을 알고 있는 지인의 증언이나 사실확인서, 심지어 지금이라도 다시 통화를 통해 마련한 녹음 등을 통해 입증을 시도 해보아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녹록한 마음이 사업에서는 상당한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다. 중요한 계약이라면 서면 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해야 할 것이며, 가능하다면 가까운 법률전문가에게 찾아가 검토를 받는 방식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