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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3-06-21본문
K는 인테리어 업자로, 최근 P가 운영하는 A회사의 인테리어를 진행해줬다. 5000만 원에 이르는 공사를 성실히 완료했으나 P는 여러 가지 핑계만 댈 뿐 차일피일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K는 P를 상대로 공사대금을 받는 소송을 진행하려고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왔다. 인테리어 계약서를 보니, 도급인 란에는 P가 기재돼 있었으나 수급인 란에는 주식회사 A가 기재돼 있었다. 사람인 K와 P가 계약을 체결한 것이 아닌, 사람인 ‘척’ 할 수 있는 법인인 A회사와 K가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 경우 원칙상 K는 A가 아닌 P에게 공사대금을 청구할 권한이 없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민법 제2장 및 제3장에서 규정하는 자연인과 법인의 개념이 필요하다. 이 사건처럼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자격을 권리능력이라고 하는데 민법에서는 이를 사람인 자연인과 법인으로 구분하고 있다. 즉 회사 등의 법인을 일정한 경우에 사람과 동일한 인격체로 인정한다는 것이다(민법 제34조 법인은 법률의 규정에 쫒아 정관으로 정한 목적의 범위 내에서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
문제는 A회사는 그 소유로 된 재산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A회사를 상대로 판결문을 받아봐야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K는 5000만 원이나 되는 공사대금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여기서 법인격부인론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법인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나쁜 짓을 하는 P의 가면을 벗기고 책임을 묻기 위해 A회사라는 가면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이론이다. 만일 법인격을 부인하고 사실상의 책임자가 그 뒤에 숨은 P임을 입증한다면 K는 P에게 대금의 청구가 가능해 진다.
판례 역시, 회사가 겉으로 보기에는 법인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법인 형태를 빌리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고 그 실질에 있어서는 완전히 그 법인격의 배후에 있는 타인의 개인 기업에 불과하거나 그것이 배후자에 대한 법률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함부로 쓰이는 경우에는, 비록 외견상으로는 회사의 행위라 할지라도 회사와 그 배후자가 별개의 인격체임을 내세워 회사에게만 그로 인한 법적 효과가 귀속됨을 주장하면서 배후자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되는 법인격의 남용으로서 심히 정의와 형평에 반해 허용될 수 없고, 따라서 회사는 물론 그 배후자인 타인에 대해서도 회사의 행위에 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봐야 한다(대법원 2001. 1. 19. 선고 97다21604 판결)고 판시함으로써 법인격부인론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였다.
판례의 취지를 바탕으로 보건데 우선 A회사는 사실상 회사로서의 개별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닌 채무면탈을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로, 사실상 P의 개인기업이라는 점을 주장, 입증해야 한다. 이에 대한 입증을 위해 실무적으로는 사실조회, 현장답사 등을 통한 A회사의 실질을 파악한 뒤, A회사의 자본이 불충분하며 사실상 P와의 재산혼융이 존재하며, 이와 같이 채무면탈로 피해를 입은 다른 사례들을 추가로 찾아봐야 할 것이다.
회사와의 계약이 개인과의 계약보다 더 신뢰가 간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자본금과 재무상태가 확실한 법인에 한정될 뿐 이 사건과 같이 채무면탈을 목적한 법인의 경우에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떠한 계약을 체결하건 내 계약 상대방이 사람인지 아니면 사람인 척하는 법인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