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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3-07-20본문
[노을을 바라볼 권리]
K씨는 몇 년 전 퇴직 후, 베란다 앞에 바다가 펼쳐진 A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도심과는 조금 떨어져 있더라도 매일 아침 펼쳐지는 붉은 노을을 만끽하기 위해서였다. 2020년 경자년 새해의 첫 일출 역시 따뜻한 집안 온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바라볼 수 있을 줄 알았다. 베란다 바로 앞으로 25층짜리 B아파트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바다가 보이는 조망과 햇빛 가득한 집안을 꿈꾸던 K씨는 B아파트 골조공사가 발목까지 진행됐을 때만 해도 설마 하고 있었다. 몇 달 전 그 골조가 머리 위를 넘어 위층 그리고 그 위층까지 올라가 거실 전체에 그늘을 지우니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 변호사를 찾아갔다.
K씨의 일조권, 조망권의 침해는 손해를 인정받고 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 대법원은 일조권에 대해 다른 건물의 신축으로 인해 그 이웃 거주자가 일조 침해의 불이익을 받은 경우에 그 신축행위가 위법한 가해행위로 평가되기 위해서는 그 일조방해의 정도가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인용하는 수인한도를 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1999. 1. 26. 선고 98다23850 판결).
여기서 말하는 수인한도란 바로 피해를 받는 주체가 ‘참을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한다. 이는 피해의 정도, 피해이익의 성질, 가해 건물의 용도, 지역성, 토지이용의 선후관계, 가해 방지 및 피해 회피의 가능성, 공법적 규제의 위반 여부 등 모든 사정을 고려해 판단하며 실무상 그 기준은 동짓날을 기준으로 8시부터 16시까지 사이의 8시간 중 일조시간이 4시간 이상도 확보가 되지 않거나 9시부터 15시까지 사이의 6시간 중 일조시간이 연속해 2시간 이상도 확보되지 않는 경우에는 ‘참을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다.
이때 건설사들은 공법적인 규제를 준수했음을 항변하는 경우가 많은데, 형식적으로 건축법 등을 준수했더라도 일조방해의 정도가 현저하게 커 수인한도를 넘는 경우, 위법행위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조망권에 대해 대법원은 어느 토지나 건물의 소유자가 종전부터 향유하고 있던 경관이나 조망이 그에게 하나의 생활이익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된다면 법적인 보호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인 바, 이와 같은 조망이익은 원칙적으로 특정한 장소가 그 장소로부터 외부를 조망함에 있어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1997. 7. 22. 선고 96다56153 판결).
정리하자면 A아파트 앞에 신축 중인 B아파트 때문에 하루에 집안으로 도합 4시간, 연속 2시간도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에는 일조권에 의한 침해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K씨와 같이 베란다 앞에 바로 바다가 펼쳐지고 매일 아침노을의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것이 가능하던 경우에는 조망권 역시 보호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K씨는 어떠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일까? 해당 소송은 환경권의 침해에 따른 불법행위 손해배상 소송으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우선 관할 법원에 소제기를 한 뒤, 재판 중의 감정평가신청으로 일조권, 조망권 침해를 이유로 한 재산상의 손실액을 입증해야 한다. 부수적으로 현장검증을 통해 실제 체감상 느껴지는 침해의 정도를 추가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하나의 팁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실무적으로는 첫째, 배상책임의 주체인 B건설사의 변제자력(손해를 배상할 능력)이 의심되는 경우가 많다. B건설사의 유일한 자산인 ‘B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는 토지’(주로 신탁회사로 넘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에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가압류 등의 보전처분을 실시하는 것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둘째, 추가적으로 K씨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공사금지가처분 등이 이루어지는 경우 오히려 B아파트 건설사로부터 조속한 피해의 회복을 받을 길이 마련될 수 있으니 골조공사가 30% 이상 마무리되기 전에 조속히 소제기와 보전처분 등을 선행하는 것이 좋다.
국토개발의 효율성, 인구의 과밀화, 밀집화라는 명목과 건설사의 욕심이 무분별한 아파트 건축을 꾀하기 시작한 것은 오늘 내일의 일은 아니다. 다만 현행 헌법상으로도 환경권을 인정하고 있으며(헌법 제35조) 공해방지법(1963년~1977년)의 시대, 환경보전법(1977년~1990년)의 시대를 거치며 환경정책기본법(1990년~)의 시대로 돌입한 지도 벌써 30년이 됐다.
국민들이 국가로부터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을 향유할 수 있는 자유를 침해당하지 않는 정도의 소극적 권리를 넘어 그런 환경을 요구할 수 있는 적극적 권리의 시대가 이미 온 것은 아닐까.